일찍이 아시아의 황금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세계의 밝은 빛이 되리라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시)
The Lamp of the East
By Rabindranath Tagore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동방의 등불
아시아의 황금기에
한국은 이의 등불-지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램프는 다시 빛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동방의 빛을 위해
시를 요청한 사람이 동아일보의 기자였기 때문에, 동아일보에 맨 처음 기고가 되었다. 그런 고로 아주 쉽게 기고된 날짜도 정확히 알 수 있는데, 1929년 3월 28일에 지어졌으며, 동아일보에는 동년 4월 2일자에 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의 등불 이라는 원래의 시는 고작 4구로 아주 짧은 시일 뿐이다.
[출처] 유사역사학에서 상당히 자주 보이는 헛소리 - 타고르의 시 (동방의 The Lamp of the East
By Rabindranath Tagore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출처] 유사역사학에서 상당히 자주 보이는 헛소리 -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작성자 Sirius
동방의 등불
아시아의 황금기에
한국은 이의 등불-지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램프는 다시 빛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동방의 빛을 위해
시를 요청한 사람이 동아일보의 기자였기 때문에, 동아일보에 맨 처음 기고가 되었다. 그런 고로 아주 쉽게 기고된 날짜도 정확히 알 수 있는데, 1929년 3월 28일에 지어졌으며, 동아일보에는 동년 4월 2일자에 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의 등불 이라는 원래의 시는 고작 4구로 아주 짧은 시일 뿐이다.
[출처] 유사역사학에서 상당히 자주 보이는 헛소리 -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작성자 Sirius
By Rabindranath Tagore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출처] 유사역사학에서 상당히 자주 보이는 헛소리 -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작성자 Sirius
동방의 등불
아시아의 황금기에
한국은 이의 등불-지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램프는 다시 빛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동방의 빛을 위해
시를 요청한 사람이 동아일보의 기자였기 때문에, 동아일보에 맨 처음 기고가 되었다. 그런 고로 아주 쉽게 기고된 날짜도 정확히 알 수 있는데, 1929년 3월 28일에 지어졌으며, 동아일보에는 동년 4월 2일자에 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의 등불 이라는 원래의 시는 고작 4구로 아주 짧은 시일 뿐이다.
[출처] 유사역사학에서 상당히 자주 보이는 헛소리 -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작성자 Sirius
남 캘리포니아 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타고르가 쓴 시의 원문
1916년 타고르는 노벨상 수상 후, 세계 여행을 하다 일본 요코하마에 들리게 된다. 당시 조선인 유학생으로서 와세다 대학 대학생이었던 진학문(秦學文) 은 타고르의 비공식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진학문은 타고르에게 다가가 한국과 인도가 비슷한 처지 (둘 다 그 당시 식민지 였지....) 라는 말을 건넸고, 타고르는 자신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에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냐면은, 인도의 독립을 바라마지 않던 타고르는 자신의 국가와 동병상련의 처지인 국가로서 조선을(한국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당시 그를 만났던 진학문이란 사람은 최남선과 가까운 사이였고, 그 때 최남선은 [청춘] 이라는 문예지를 내고 있었다. 진학문은 타고르에게 [청춘] 지에 시를 써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고, 타고르는 이름과 주소를 메모한 뒤 미국 여행을 끝낼 때 까지는 시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최남선 앞으로 시가 왔고, 그 시는 [청춘]지 1917년 11월호에 기재 되었으며, 번역은 아까 그 진학문씨가 했다고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